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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성경말씀

성경공부 스가랴서 네 뿔과 네 대장장이의 환상

by @블로그 2023.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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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서 강해


우리는 1장 전반부에서는 스가랴 선지자가 누구인지, 스가랴서의 주요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배웠고, 저번 시간 1장 중후반부에서는 붉은말을 탄 사람에 대한 환상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스가랴서에는 총 8가지의 환상이 등장하는데, 그 첫 번째가 저번시간에 배운 붉은말을 탄 사람의 환상이었습니다. 이 환상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고난가운데 함께 하여 주시는 주님에 대한 말씀을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은 두 번째 환상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두 번째 환상은 네 뿔과 네 대장장이에 대한 환상으로서, 주된 내용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던 나라들을 하나님이 징계하시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본문 18절과 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개의 뿔이 보이기로” “이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대답하되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뜨린 뿔이니라” 하나님이 두 번째 환상을 스가랴선지자에게 보여주십니다. 그 환상을 보니깐 네 개의 뿔이 먼저 보입니다. 이 뿔을 보고 스가랴가 묻습니다. ‘이것들이 무엇입니까?’뿔은 일반적으로 권세나 세력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시편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을 향해서 ‘내 구원의 뿔 되신다.’라고 선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비단 하나님뿐만 아니라 인간들을 향해서도 ‘악한 뿔, 교만한 뿔을 높이 들지 말라고 ’ 나와 있습니다. (시 75:4-5) 성경은 뿔을 이야기할 때, 이처럼 권세나 세력, 힘과 능력을 상징적으로 묘사하여 말합니다.(시 92:10)

오늘 환상에서 보인 네 뿔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대적하는 악한 세력들, 악한 권세들을 의미합니다. 19절 마지막에 보면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뜨린 뿔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을 헤치고 흩어놓은 세력들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앗수르나 바벨론 같은 나라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는 이 뿔들은 당시 이스라엘들을 역사적으로 공격하고 괴롭혔던 적대적 세력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이스라엘 전 역사의 과정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짓밟고 괴롭히는 세력들과 그 기간 전체를 상징한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바벨론, 메대와 바사, 페르시아, 로마)(이방인의 때: 복음이 이방인 가운데 전파되고 있는 때, 아직도 이스라엘은 짓밟혀있는 때)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서 구약과 신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적대하고 괴롭히는 모든 세력들을 네 뿔로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사실 예언들을 우리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역사의 특정 사건과 무조건 적으로 연관 짓다 보면, 잘못된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성경의 환상과 예언들을 어떤 사건과 결부하려다가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계시록을 비롯해 종말론을 해석하고 연구하다가, 오늘날 TV나 매스컴에 나오는 특정 사건들을 자꾸, 성경과 결부시키려 하다가 잘못된 해석, 극단적인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점을 조심하고 유의해야 합니다.

성경 속에 기록된 예언과 환상들은 항상 특정 사건과 연결 짓기보다는 구약과 신약 전체에 걸쳐, 하나님 백성들의 구원의 역사, 즉 하나님의 구속사라는 전체적인 틀 아래서 넓게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건강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과 신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하고 있는 모든 세력, 교회를 위협하고 공격하는 모든 세력들을 대표하고 그들의 핍박의 기간들을 상징하는 것이 네 뿔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네 뿔이 환상이 보이고, 곧바로 또 다른 환상의 장면이 보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20절과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대장장이 네 명을 내게 보이시기로” “내가 말하되 그들이 무엇하러 왔나이까 하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그 뿔들이 유다를 흩뜨려서 사람들이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니 이 대장장이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의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흩뜨린 여러 나라의 뿔들을 떨어뜨리려 하느니라 하시더라”

이 뿔의 환상 다음에 하나님은 스가랴에게 네 명의 대장장이의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대장장이는 쇠나 철로 칼이나 여러 가지 도구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대장장이가 어떻게 도구를 만듭니까? 쇠나 철을 뜨거운 풀무불에 집 넣어서 빨갛게 만든 다음, 다시 꺼내서 큰 망치로 원하는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 두드립니다. 어느 정도 두드리면, 물에 넣어 식힌 후, 또다시 풀무 불에 쇠를 넣고, 다시 꺼내서 망치를 두드립니다. 이 대장장이가 망치와 불로 쇠를 다스리고, 만지는 것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세력,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나라들을 징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21절의 마지막에 보면 하나님이 ‘유다 땅을 흩뜨린 여러 나라의 뿔들을 떨어뜨린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즉 이 대장장이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원수의 세력들을 제압하기 위해서, 뿔들을 제압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 혹은 세력들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적들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쓰시는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세력을 하나님이 준비하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했을 때 잠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신 차릴 수 있도록 이방 민족을 징계의 몽둥이로 사용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징계의 몽둥이로 이들이 쓰임을 받았다는 말이 반드시 좋은 말이 아닙니다. 쓰임 받는 것도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영광스럽게 쓰임을 받는 것이 있고, 악하게 쓰임 받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일도 아닌데 좋은 것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안 좋은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안 좋은 도구로 쓰셨는데, 그것이 앗수르나, 바벨론 같은 이방민족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정신 좀 차리게 하기 위해서 이들을 들어 썼는데, 너무 도가 지나쳤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보다, 더 지나치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핍박했다는 것입니다. 15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조금 진노했는데, 이 징계의 막대기로 사용한 이방민족들이 힘을 내어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힌 것입니다. 정작 주인은 조금 화내고 끝내려고 한 일을, 나쁜 종이 엄청 열을 올리고 더 화를 내어 일을 크게 낸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살짝, 조금만 혼내라고 했는데, 그들이 엄청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짓밟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내가 언제 너희보고 그렇게 하라 했느냐, 내가 조금만 혼내라고 했는데, 너희가 도가 지나치게, 내 백성들을 많이 혼냈구나’ 사실은 앗수르나 바벨론이 이뻐서 그들을 쓰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 역시도 형편없는 죄악으로 가득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런 민족이 자신들의 처지는 생각 안 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크게 짓밟은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을 징계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백성들이 타락을 하면 징계를 내리시고, 회개를 하시면, 그 징계의 위기와 어려움에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방의 여러 나라와 민족들의 세력들 사용하십니다. 징계의 도구로 사용된 앗수르는 나중에 바벨론에 의해서, 바벨론 역시 훗날 페르시아에 의해서 멸망을 당합니다. 모든 세계와 역사와 나라가 하나님의 주권아래, 그분의 손바닥 밑에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 고레스 왕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유를 허락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게 명령을 내립니다. 이것은 단순히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사건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역사의 배후에 하나님이 모든 것들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역사를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가 지배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앗수르를 쓰시다가 앗수르가 잘못하니깐, 바벨론을 쓰십니다. 바벨론을 쓰시다가 그들이 잘못되니깐 이번엔 페르시아를 쓰십니다. 페르시아를 쓰시다가 그들이 잘못하니깐 나중에는 로마를 쓰십니다.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가운데 그들을 쓰신 것입니다. 그들이 잘못하면 하나님은 가차 없이 그들을 버리십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하나님이 가차 없이 버리는 일을 행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비록 잘못을 하고 실수를 하여도, 사랑의 매가 있을지언정, 영원히 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자, 하나님 백성들의 감사와 찬양의 이유입니다. 네 개의 뿔과 같은 악한 세력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힐 때, 하나님은 이미 네 명의 대장장이 같은 세력을 준비하셔서, 그들의 악한 궤계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기와 역경에서 건져주신다라는 사실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네 뿔과 네 대장장이의 환상이 오늘날 저와 여러분에게 주는 교훈과 메시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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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은 멸하신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자들은 결국 누구를 대적하는 것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면, 하나님이 가만히 있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자, 역사가운데 밝혀진 교훈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그러면서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말씀은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만 하신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교회와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약속인 것입니다.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향한 말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 개인을 위한 축복이란 것입니다. 교회와 우리 개인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교회와 성도를 괴롭히고 핍박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대적하시고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대적은 결국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던 앗수르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합니다. 바벨론은 또다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다가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은 언젠가 하나님에 주권과 섭리에 의해서 심판받게 된다라는 것이 성경이 가르쳐주고 역사가 증명해 주는 교훈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누군가에 의해서 괴롭힘을 당하고 핍박을 당할 때, 우리는 너무 흥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다루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원수의 보복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바로잡아 주실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9절에 보면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고 나와 있습니다.”보복은 그리스도인의 방법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주권과 섭리가운데 그들을 만지실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대적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원수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아무리 괴롭혀도, 그분의 뜻과 계획을 방해해도, 하나님의 뜻은 결국에 이루어진다라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사실 스가랴 선지자가 이 환상을 경험할 당시에 가장 중요한 과제는 성전 건축이었습니다. 포로 귀환 민들이 꿈과 소망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그래서 성전을 재건하려고 했는데 이방민족들이 방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성전이 재건되지 않고 무너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스가랴에게 말씀을 주시고 환상을 주신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러한 절망가운데 하나님께서 성전재건을 비롯한 하나님의 계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그 사실을, 알려줌으로, 위로와 격려를 주시기 위해서 말씀과 환상을 주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전재건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많은 반대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성전은 다시 재건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도시도 재건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대적들이 하나님의 일을 아무리 방해하고 반대할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고야 말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고, 선교를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 영혼을 구원하는 일들에 얼마나 많은 핍박과 방해가 있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 세계 곳곳에 얼마나 많은 교회와 성도가 핍박을 받고, 얼마나 많은 선교사님들이 선교를 위해서 생명을 걸고 사명수행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퍼지게 하실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습니다. 사탄과 마귀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공동체와 성도들을 흔들어 놓으려고 합니다. 이리저리 우리를 공격하고 우리를 핍박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결국 하나님과 그분의 교회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음부의 권세는 승리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승리하시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시고야 마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잡고 있는 한, 승리할 수 있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회개할 때마다 새로운 기회를 주신다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를 범하면 어떻게 됩니까? 매를 맞고 징계를 받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방인들과 하나님 백성들의 차이는, 이방인들은 쓰임 받다가, 그들이 타락하면 버림받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원히 버림받지는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타락하면 매를 맞고, 회개할 때까지 징계를 받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잘못한다고 인연을 끊지 않고, 옳은 길로 갈 때까지 혼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매입니다. 우리가 징계를 받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기자는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6,8)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죄는 우리에게 징계를 가지고 옵니다. 그러나 징계가 끝이 아닙니다. 회개하면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회계를 통해서만 우리는 새로운 기회를 갖게 됩니다. 오늘 두 번째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세력들을 대적하신다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원수들을 대적하신다라는 사실 만으로, 우리는 안심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들을 대적하는 세력들을 멸절하시는 것처럼,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을 괴롭히고, 대적하는 핍박자들이 대적해 주신다라는 사실을 우리가 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수이 세력들을 대적하시고, 그들을 친히 심판하신다면,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대적을 처리하십니다. 원수를 대신 갚아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회개입니다. 하나님이 원수들의 세력들을 꺾으신 이유는, 그것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소명을 제대로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대적이 없어지고 문제가 없어졌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고, 새롭게 주의 사명과 일을 감당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 그 기회를 잘 선용해야 합니다. 스가랴 서는 두 번째 환상이 끝이 아닙니다. 원수들을 제압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대한 환상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가랴에서 환상이 총 몇 번 나온다고 했습니까? 8번입니다. 두 번째 환상이 끝나고 이제 앞으로 세 번째 환상이 스가랴 2장에서 나옵니다. 이 세 번째 환상의 내용은 원수들을 제압하시고,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케 하시는지에 대한 환상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러한 회복의 역사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는지 아십니까? 바로 회개입니다. 사실 대부분 우리를 대적하는 세력들, 우리가 고난당하고 핍박당하는 이유 중 상당수가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도 그들의 불순종과 온전히 못함으로 인해서 원수들의 조롱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못해서 이러한 적대하는 세력들이 일어났지만 회개하면 새로운 기회를 주신다는 메시지를 환상을 통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과거에 어떤 나라의 왕이 감옥에 가서 죄수들을 만나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죄수들이 왕을 만나자 하는 말이 일관되게 자신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 한 명만이 왕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지금 제가 범한 죄에 대한 마땅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를 일으켜 세우더니, 감옥에서 꺼내 자유를 주었다고 합니다. 감옥에 갇힌 죄인들이 자신이 죄가 없고 자신이 억울하게 여기에 갇혔다고 한다라면, 결국 누가 잘못했다라는 것입니까? 왕이 잘못한 것입니다. 왕이 잘못해서 죄없는 사람을 감옥에 넣게 된 것입니다. 죄인이 죄가 없다고 한다라면, 그것은 하나님을 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죄인이 죄인됨을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길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고 주님께로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만 회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사람도 회개가 필요합니다. 구원받기 위한 회개는 그동안 내 자신이 하나님의 믿지 않고, 그분이 뜻을 거스리는 삶을 살았던 것,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미 이러한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은 이제 구원을 위한 회개가 아니라, 구원을 이루어가고 완성하는 회개, 성화를 이루어가는 회개, 하나님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한 회개,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한 회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 한 회개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회개의 삶이 우리들 가운데 있으십니까?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았던 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한 죄, 주님과 동행하지 못한 죄, 이 죄를 회개하는 해야 합니다. 우리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도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섬기지 못하고, 우리가 받은 축복들을 세상의 육적인 욕심을 위해서 사용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개인의 욕심을 위해서, 살았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이 민족이,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되고 부흥케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우리가 죄인입니다.’ 이렇게 진지하게 회개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회복의 희망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회복의 역사, 귀한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는 역사가 우리들 가운데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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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 하셨으니 이곳에서의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도 그와 같은 역사가 이루어질 줄로 믿고 소망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드립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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