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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성경말씀

성경공부 전도서 1장1-11절

by @블로그 2022.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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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하고 공허하고 덧없는 인생에 대항하는 것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영원하신 존재를 모르는 것이야말로 이 짧은 유한한 인생을 너무나 쉽게 날려버리는 것이다. 문명과 과학, 사회가 발전하여 그 혜택을 누릴라치면 자기 효능감에 빠지게 된다. 문명이라는 도구로 자신의 인생을 충분히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명과 과학의 발전이라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을 바꾸지도 못할뿐더러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 또한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 헤벨의 세상, 즉 잠깐 스쳐 지나가는 세상 가운데에서 문명과 과학의 발전에 존재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 지금도 그분의 손길에 의해 이 역사가 운영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유한하고 제한적인 내 인생을 영원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분명히 존재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것이 허무하고 공허한 우리의 인생을 가장 빛나게 하고 지혜롭게 한다."


전도서 1:1-11


<공허하고 허무한 우리의 인생을 가장 빛나게 하는 것>



1. 헤벨, 인간의 유한함(1-4)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섣불리 정의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전도서는 인생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전도서의 핵심어는 ‘헤벨’인데 이는 ‘아주 잠깐의 존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고 미약한 지를 그리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전도서는 조언하고 있는 것이다. 에이미 플란팅가 포는 전도서를 이렇게 정의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피조물의 유한한 삶” 참으로 그의 정의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전도서의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잠언과 성격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잠언은 인과응보적인 성격을 갖는 한편 전도서는 인생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이 땅에서의 삶은 단순히 인과응보적인 공식으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한 일을 해도 고난받을 수 있고 형통을 보장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영원의 관점에서 아무 것도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전도서의 저자는 자신의 신분을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라고 칭하고 있다. 이 말로 추정해보면 다윗의 아들 중에서 예루살렘의 왕이 된 것은 솔로몬밖에 없기에 전도서의 저자는 솔로몬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최신 신학 경향에 의하면 여러 가지 이유로 전도서의 저자가 솔로몬이 아닐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권지성은 전도서에 ‘솔로몬’이라는 이름이 직접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 분열 이전의 이스라엘에 관한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등을 들어 아마도 전도서의 화자는 저자에 의해 제3의 인물로 창조된 것으로 여겨진다고 주장한다. 이것도 확실하지 않은 추측에 불과하다.

전도서의 저자가 솔로몬이든 다른 제3의 인물이든 그는 모든 것이 헛되다는 말을 4번이나 표현할 정도로 인생의 허무함을 말하고 있다. 저자는 아마 모든 지혜와 부를 누린 인물이었을 것이다. 이런 그가 인생이 헛되다고 말한다는 것은 인생의 허무함과 덧없음의 실상과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누렸던 이가 헛되다는 것은 굳이 우리가 그것을 누려보지 못하더라도 그 실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유한한 이 땅에서 수고하는 것이다. 결국 무엇을 위해 수고하는가? 의식주에 관한 것이 아니겠는가! 저자는 수고하는 우리에게 이 또한 유익하지 않고 무익함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이익을 해 아래에서 잠깐 주어지고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세대가 가고 또 다른 세대가 오면 여러 문명의 발전이 그 뒤를 따르지만 인간의 수고의 본질은 같다. 세대가 세대에게 영원한 것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세대를 거친 모든 인간의 수고는 허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유한한 세상, 영원한 하나님(5-11)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그분의 창조질서대로 움직인다. 해가 뜨는 것과 지는 것이 반복되는 것, 바람이 이러저리 불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또한 이 땅의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도 넘치지 않고 돌고 돌아 결국 처음으로 돌아간다. 크고 위대한 움직임 같지만 모든 것이 반복되는 것이 피조물들의 현상이다. 이런 반복되는 자연질서 가운데에서 잠깐 그곳을 나그네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인간이다. 정한 시간이 되면 죽음으로 인생을 끝내어 다시 반복되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유한함이야말로 헛되고 또 헛될 수밖에 없다.

모든 만물들은 끊임없이 순환하며 만족을 찾고 있지만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해도 만족하지 못한다. 만족함이 없고 피곤함과 허무함만 있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인 것이다.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듣고 있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이들이기에 그분의 말씀을 듣고 보지 않는 이상 영원한 만족을 찾기란 요원하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만족을 추구하고 찾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열심히 하나님을 보고 듣기 위해 열심을 다해야 한다. 인간의 근원적인 목마름과 만족함을 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인 것을 알고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가려는 자가 승리자다.

문명과 사회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는 지금도 새로운 것이 쏟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새 아래 새 것은 없다. 이전에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던 것이 등장하면 당장의 생활이 편리해지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성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새 것이 아니다.

이전 것이 편리한 방법으로 확장된 것일 뿐이다. 이전 세대에 흥했던 문명은 지금의 역사책에 단지 몇 줄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세대는 우리에게 잠시의 기억을 줄 뿐 우리에게 궁극적인 변화를 주지는 못한다. 이렇게 허무하고 헛된 인생 앞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창오주이시며 영원히 역사위에 서계신 하나님이다. 주에 대한 기억은 영원히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3. 삶 속으로...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대로 운행되고 있는데 그 특징 중 하나가 있다면 모든 것이 돌고돌아 처음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출발했다고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무한 반복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사실 인간도 그렇다. 흙으로 만들어져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인생 아니던가! 이런 관점으로 보자면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고 덧없는지 모른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즉 죽기 위해 태어나 살고있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허무하고 공허하고 덧없는 인생에 대항하는 것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영원하신 존재를 모르는 것이야말로 이 짧은 유한한 인생을 너무나 쉽게 날려버리는 것이다. 문명과 과학, 사회가 발전하여 그 혜택을 누릴라치면 자기 효능감에 빠지게 된다. 문명이라는 도구로 자신의 인생을 충분히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명과 과학의 발전이라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을 바꾸지도 못할뿐더러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 또한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 헤벨의 세상, 즉 잠깐 스쳐 지나가는 세상 가운데에서 문명과 과학의 발전에 존재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 지금도 그분의 손길에 의해 이 역사가 운영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유한하고 제한적인 내 인생을 영원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분명히 존재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것이 허무하고 공허한 우리의 인생을 가장 빛나게 하고 지혜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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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 하셨으니 이곳에서의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도 그와 같은 역사가 이루어질 줄로믿고 소망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 드립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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