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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성경말씀

성경공부 마태복음 17장1-13절

by @블로그 2023.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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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7:1-13

<어두움을 상쇄할 빛난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



1. 변화산에서의 신비한 경험(1-8)
육일 뒤에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 그의 동생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 그런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분의 모습이 변했는데, 그의 얼굴을 해처럼 빛나고, 옷은 빛처럼 희게 되었다. 그러더니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께 우리가 여기에 계속 있고 싶습니다. 원하신다면 여기에 초맛 세 개를 지어 하나는 주님을 위해 하나는 모세, 다른 하나는 엘리야를 모시고 싶다고 말한다.

이렇게 베드로가 말하는 중에 갑자기 빛난 구름을 그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구름 뒤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는 음성이 들린다. 이 음성을 들은 제자들은 매우 두려워 그 자리에서 엎드린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후에 그들의 눈을 들어보니 예수님만 남아계셨다.  

예수님은 세 제자들을 따로 이끌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 그들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었는데, 이들은 감란산에서도, 그리고 겟세마네에서도 특별히 예수님과 함께 있던 제자들이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 사도행전에서도 큰 역할을 감당했다. 산에 올라가자 예수님의 모습이 변화되었다. 어떤 형태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얼굴이 빛나는 영광으로 충만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들 앞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꿈이 아니었다. 그들은 예수님과 앞으로 시작될 수난에 관해 대화하셨다(눅 9:31). 결국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존재 목적을 더욱 강화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이 환상적인 장면 앞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베드로였다. 그는 지금의 순간이 너무 황홀하여 초막 셋을 지어 이곳에 함께 머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곳에 계속 머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주님께서 원하시면”이라는 조건을 붙인 것으로 보아 일방적인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 앞에 자신의 뜻을 열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때 갑자기 구름이 그들 모두를 뒤덮고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 경험하는 일로 인해 제자들은 두려워 떨 수밖에 없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은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에도 들렸던 음성이다. 세례가 속죄에 대한 죽음의 사명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이곳에서의 음성은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목적을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지금은 그 길을 걸어가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2. 예수와 제자들의 대화(9-13)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 예수님이 그들에게 인자가 죽은 사람 가운데에서 살아날 때까지는 지금까지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신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왜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하는지 묻는다. 이에 예수님은 확실하게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시킬 것이라 답하시며, 이어서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이 그를 알지 못하고 홀대했다. 인자도 그와 같이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 하신다. 그제야 제자들은 예수님이 세례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이 있기까지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들을 사람들에게 절대 알리지 말라고 하신다. 방금의 신적영광을 군중들이 알게 되면, 예수님을 실제 메시아로 알고 더욱 모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의 수난과 순종의 과정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변화산에서의 신비한 경험을 한 제자들은 엘리야가 오면 온전한 회복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왜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셔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 질문에 예수님은 변화산에서의 엘리야는 곧 세례요한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메시아를 위한 준비를 위해 존재하는 이라고 간접적으로 말씀하신다. 세례요한이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온 것처럼 엘리야도 동일한 목적으로 왔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엘리야가 세례요한의 역할을 하기 위해 왔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제자들은 그가 바로 세례요한인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3. 삶 속으로...
영광을 경험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는 없다. 한 번 영광을 경험하면 그곳에 머물고 싶어 하고,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거처를 마련해서라도 그 영광을 취하는 지점에 머물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힘들고 손가락질당하는 일보다는 이왕이면 칭찬도 받고, 유익도 얻고, 영광을 취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난 없는 쉬운 영광을 지금도 찾아다니고 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핵심이자 영광이다. 그러나 십자가 자체는 가장 참혹한 사형틀이었다. 십자가가 영광을 가져다준다지만 이전에 고난을 통과하지 않으면, 십자가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이렇게 기독교의 영광은 십자가 뒤에 숨겨져 있다. 그 영광의 높이와 깊이를 감히 우리가 측정하지 못한다. 지금은 단지 희미한 형상만을 맛볼 뿐이다. 그 희미한 것을 맛볼 수 있는 것은 말씀이라는 거울이다. 우리는 말씀이라는 거울을 통해 “아 앞으로 우리가 취할 영광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잠깐 맛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을 도구 삼아 말씀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영광이 무엇인지를 아주 조금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런 고난의 과정 없이 영광만 쏙 빼먹으려고 한다. 신앙을 가진 것으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 자체로 영광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 자체로 복을 받거나, 영광을 취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거짓 복음이다. 십자가 없는 영광 없고, 광야 없는 은혜는 없기 때문이다. 말씀의 길을 따라 살 때 받는 고난을 피하지 말고, 버티고 버텨 거뜬히 넘겨라. 당신이 경험한 어두움을 상쇄할 찬란하게 빛난 영광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핵심이자 영광이다. 그러나 십자가 자체는 가장 참혹한 사형틀이었다. 십자가가 영광을 가져다준다지만 이전에 고난을 통과하지 않으면, 십자가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이렇게 기독교의 영광은 십자가 뒤에 숨겨져 있다. 그 영광의 높이와 깊이를 감히 우리가 측정하지 못한다. 지금은 단지 희미한 형상만을 맛볼 뿐이다. 그 희미한 것을 맛볼 수 있는 것은 말씀이라는 거울이다. 우리는 말씀이라는 거울을 통해 “아 앞으로 우리가 취할 영광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잠깐 맛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을 도구 삼아 말씀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영광이 무엇인지를 아주 조금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런 고난의 과정 없이 영광만 쏙 빼먹으려고 한다. 신앙을 가진 것으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 자체로 영광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 자체로 복을 받거나, 영광을 취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거짓 복음이다. 십자가 없는 영광 없고, 광야 없는 은혜는 없기 때문이다. 말씀의 길을 따라 살 때 받는 고난을 피하지 말고, 버티고 버텨 거뜬히 넘겨라. 당신이 경험한 어두움을 상쇄할 찬란하게 빛난 영광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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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 하셨으니 이곳에서의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도 그와 같은 역사가 이루어질 줄로믿고 소망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 드립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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