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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성경말씀

마태복음 19:13-30 버려야 누릴 수 있다

by @블로그 2023.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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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9:13-30
<버려야 살고 버려야 누릴 수 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 지역에서 원숭이를 잡는 방법이라고 한다. 원숭이 손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입구가 있는 투명한 호리병 같은 것을 준비하여, 그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바나나나 열매 같은 것들을 넣어둔다. 그 병을 발견한 원숭이는 병에 손을 넣어서 과일을 움켜쥔다. 병의 입구가 작기 때문에 당연히 과일을 움켜쥔 채 손을 빼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때 병 덫을 만든 사람이 다가오지만 원숭이는 도망도 가야 하고, 과일도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로 그 자리에서 발버둥 칠 수밖에 없다. 결국에는 과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사람에게 잡히고 만다고 한다. 과일만 잠시 놓으면 되는데, 잠깐의 그 유혹 때문에 사람에게 잡혀 생명을 잃고 마는 것이다. 매우 미련해 보이는 행동이다. 그러나 어디 원숭이뿐인가!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 아닌가! 버려야 살 수 있는데, 버리지 못해서 궁극적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제자도 되고 싶고, 이 땅에 있는 좋은 것들도 모두 누리고 싶다. 그러나 결국에는 땅의 것을 움켜쥠으로 하나님과도 영생과도 점점 멀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을 가지기 위해서는 덜 가치 있지만 가장 중요하게 보이는 허상을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버려야 살고, 버려야 얻을 수 있다. 버림과 포기가 익숙한 이가 가장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다.


1. 어린아이들 같지 않으면...(13-15)
하루는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엊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들의 모습을 보고 꾸짖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린이들을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안수하시고 그곳을 떠나셨다.

어린아이들을 바라볼 때,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 귀찮은 존재로 인식하곤 한다. 이러한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했던 것 같다. 그들을 데리고 온 것은 아마 부모들로 추정된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 아이들에게 축복기도라도 해주십사 하고 각자의 자녀들을 데려왔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이들이 오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아 그들을 꾸짖었다. 여기서 사용한 ‘꾸짖다’라는 표현은 제자들이 악령과 악한 존재를 꾸짖을 때 사용하던 단어가 같다. 진심으로 그들을 꾸짖은 것이다. 아마도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는 아이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으며, 오히려 훼방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막지 말라고 하시며, 오히려 하나님 나라가 바로 이들의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어린아이들처럼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것, 계산하지 않는 순수하고 신실한 믿음을 가진 이들의 것이라고 교훈하신 것이다.

2. 너무 많이 가지면...(16-22)
어떤 이가 와서 내가 어떤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지 묻는다. 예수님은 왜 선한 일을 나에게 묻냐고 하신다. 선한 분은 오직 한 분이며, 네가 만약에 생명에 들어가고 싶다면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가 어떤 계명을 지켜야 하냐고 묻자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말하지 말고, 부모를 공경, 그리고 너를 사랑하듯이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이에 그가 내가 모든 것을 다 지켰다고 하자, 예수님은 너의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에게 모두 나눠주어라. 그러면 너의 진정한 부가 하늘에 있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이 대답을 들은 그는 매우 근심하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그에게는 많은 재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큰 부자인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영생에 대해서 자세히 묻는다. 아마도 그는 영생에 대해서 심각하고 고민한 적이 있을 뿐 아니라, 영생을 얻고자 하는 갈망이 있었다. 예수님은 계명을 지켜야 함을 말씀하시고 십계명 중 5-9 계명을 지켜야 함을 답하셨다. 그러나 이 청년은 영생에 대한 갈망이 있었기에 그 모든 것을 어느 정도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 있게 답하자, 예수님은 결정적으로 가진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준 후에야 나를 따랄 수 있다고 답하신다. 여기서 그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그냥 떠나버리고 만다. 결국 그는 영생보다 현세의 제물을 더 가치 있게 여겼던 것이다.

3.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23-30)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더 쉽다고 하신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며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냐고 물으신다. 예수님을 그들을 바라보시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대답하신다. 이에 베드로가 우리는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주를 따랐으니, 우리가 무엇을 받을 수 있겠냐고 묻는다. 예수님은 새로운 세상이 오면 인자가 자신의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게 될 텐데,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서 세상을 심판하고 다스리게 될 것이다. 나의 이름을 위해 집이나 가족, 땅이나 자신의 것을 희생하는 자는 모든 것을 백 배로 보상받게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도 얻게 될 것이다. 먼저 된 자가 나중이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바늘귀는 바늘에 난 아주 작은 구멍으로서 작고 얇은 실을 넣는 곳이다.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작은 구멍을 비유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결국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신 것은 부자가 영생을 얻는 것이 거의 불가능함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많은 재산을 가진 자일수록 그곳은 좁은 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재산은 맘몬의 영역으로서, 영생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부자 청년의 대화를 들은 제자들은 그 기준으로 한다면 과연 누가 영생을 얻을 수 있냐고 묻는다. 그 문이 그렇게 좁아서 들어가기에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그 일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밝히신다. 급진적이고 성격이 급한 베드로는 우리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는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뭐냐고 묻는다. 앞서가는 질문이다. 예수님은 앞으로 올 세상, 그리고 그곳에서 있을 일들을 자세히 풀어서 말씀하신다. 인자가 오실 때 곧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되면, 모든 것이 새롭게 되어 끝까지 예수님을 따른 자들은 심판을 받는 자리, 다스림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심판하는 자리, 다스리는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라 하신다. 그리고 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 즉 관계와 소유를 모두 버리면, 백배 이상으로 보상받는 복을 받을 것이라 하셨다. 그 보상은 바로 영생이다. 땅의 것을 포기하고 버리면, 하늘의 것을 받는 궁극적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먼저 되려는 교만에 대해서 경계하신다.

4. 삶 속으로...
항상 그놈의 돈이 문제다. 부의 축척과 많은 재물이 하나님의 복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은 돈을 맘몬으로 여겨 항상 주의하라고 하셨건만, 인간은 더 많은 돈을 가지는 것을 실질적인 복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돈을 싫어하는 이는 없다. 나도 돈이 좋다. 돈이 있으면 행복한 건 아니지만, 불편하지 않다. 사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모두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드러나고 보이는 돈이 보이지 않는 영생의 가치보다 크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돈은 맘몬이다.

아프리카나 동남아 지역에서 원숭이를 잡는 방법이라고 한다. 원숭이 손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입구가 있는 투명한 호리병 같은 것을 준비하여, 그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바나나나 열매 같은 것들을 넣어둔다. 그 병을 발견한 원숭이는 병에 손을 넣어서 과일을 움켜쥔다. 병의 입구가 작기 때문에 당연히 과일을 움켜쥔 채 손을 빼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때 병 덫을 만든 사람이 다가오지만 원숭이는 도망도 가야 하고, 과일도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로 그 자리에서 발버둥 칠 수밖에 없다. 결국에는 과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사람에게 잡히고 만다고 한다. 과일만 잠시 놓으면 되는데, 잠깐의 그 유혹 때문에 사람에게 잡혀 생명을 잃고 마는 것이다. 매우 미련해 보이는 행동이다. 그러나 어디 원숭이뿐인가!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 아닌가! 버려야 살 수 있는데, 버리지 못해서 궁극적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제자도 되고 싶고, 이 땅에 있는 좋은 것들도 모두 누리고 싶다. 그러나 결국에는 땅의 것을 움켜쥠으로 하나님과도 영생과도 점점 멀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을 가지기 위해서는 덜 가치 있지만 가장 중요하게 보이는 허상을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버려야 살고, 버려야 얻을 수 있다. 버림과 포기가 익숙한 이가 가장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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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 하셨으니 이곳에서의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도 그와 같은 역사가 이루어질 줄로 믿고 소망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드립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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