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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성경말씀

마태복음 27장 57-66절 예수님의 장례

by @블로그 2023.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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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57-66

<우리를 부끄럽게 할 이들이 숨어있다.>

1. 예수님의 장례(57-61)
날이 어두워졌을 때 아리마대 출신인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부자였으며 예수님의 제자였다. 그는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빌라도는 그이 청을 들어주게 된다.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가지고 와서 깨끗한 세마포에 싸서 바위를 깎아서 만든 자기의 무덤에 모시고 돌을 굴려 입구를 막았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무덤 맞은편에서 앉아 있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등장한다. 그의 이력이 독특하다. 그는 부자였지만, 예수님의 제자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유대인의 최고 기관인 공회 의원이었지만, 존경받는 자이기도 했다. 흔히 복음서의 맥락을 보면 부자와 공회 의원이라면 예수님과는 조금 동떨어진 인물일 가능성이 컸지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그런 불리한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이면서 존경받는 자였다. 특히 마가복음에서는 그를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로 표현하고 있다. 공회 의원으로서 로마 정부와 공식적인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시신을 인양하는 데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 유대인들은 십자가형을 가장 저급하고 저주받은 죽음으로 여겼기 때문에, 십자가형을 통해 죽은 사형수가 있다면 제대로 장례를 치러주지 않고, 대충 외곽의 공터같은 곳에 매장하곤 했다. 그러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가장 깨끗한 세마포로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는데, 그 정에 먼저 값비싼 향품으로 시신을 먼저 닦았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만든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안장하고 큰 돌로 무덤의 입구를 막았다. 오랫동안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지만 조용히 따르던 요셉이 예수님의 장례까지 치렀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요셉뿐만이 아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도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뒤를 따름으로 나중에는 결국 부활의 증인들이 되었다.

2. 무덤을 굳게 지키다.(62-66)
그 다음날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빌라도를 찾아가서 세상을 미혹했던 저자가 자신이 죽으면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으니 사흘째 되는 날까지 무덤을 철저히 지켜달라고 요청한다. 그들은 혹시나 그의 제자들이 그의 시신을 훔쳐가서 그가 부활하셨다고 말하고 다닌 면 앞으로 우리의 처지가 이전보다 더 곤란해질 것을 두려워했다. 이에 빌라도는 내가 경비병을 몇 명 줄 테니 데리고 가서 힘껏 지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경비병을 세워 무덤을 굳게 지켰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도 불안해했다. 그가 부활한다고 말하고 다닌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저 미혹하는 자’라고 칭하고 있는데 ‘저’라는 말은 대상을 매우 경멸하고 조롱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거기에 ‘미혹하는 자’라고 까지 했으니, 그들은 예수님을 모함해 죽여놓고도 계속 조롱하는 태도까지 보였다.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지만, 나중에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가서 거짓으로 그분이 부활했다고 다니면 동요가 생길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병사를 통해 그 무덤을 지켜야 한다고 간청한 것이다. 이에 빌라도는 경비병 몇 명을 주어 알아서 무덤을 지키게 했다. 그러나 이런 인위적인 방법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그날은 안식일 다음 날로서 경비병에게 무덤을 지키라고 한 것은 그들이 그토록 신성시 여겼던 율법을 어기는 것이었다. 이렇게 율법은 그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행하려는 수단에 불과했다.

3. 삶 속으로...
진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진짜라면 드러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갈 뿐이다. 인정받는 것에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에 드러날 일도 별로 없다.

그런데 가짜는 쉽게 드러내고 싶어한다. 빈 수레가 요란한 것처럼 그의 내면에 들어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밖으로라도 무언가를 드러내려 하는 것이다. 중요한 내면의 가치를 보이는 외양의 무언가로 채우려 하는 것이다. 진짜와 가짜가 구분되는 것은 결국 위기의 순간이다.

겉으로는 누가 진짜 제자인지 가짜 제자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가짜일수록 더욱 요란한 경우가 많다. 가짜는 내면에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조금이라고 가지고 있는 신앙의 영역들을 부풀리려고 한다. 기도할 때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던 화려한 언어를 구사하면서, 있지도 않은 거룩함들을 보여주려고 한다. 직분에 집착하며, 어떻게 해서든 한 자리에 오르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이렇게 교회 내에서 명예욕, 인정욕에 사로잡혀 있는 가짜 제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데 이들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은 위기의 때이다. 가장 거룩해 보이고, 예수님만 평생 사랑하고 섬기겠노라고 호언장담하는 이들은 위기의 때가 되면 보이지 않는다. 모두 도망가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 내에서 명예욕과 인정욕에는 전혀 관심 없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자들이다. 그들의 관심사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이다. 비록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거나 직분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신앙의 본질적 가치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은 묵직하다. 결코 가볍지 않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괜찮은 신자들은 사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정말 괜찮은 신자들은 우리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위기의 때에, 십자가 앞에서 정말 괜찮은 신자가 홀연히 나타나 우리를 부끄럽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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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 하셨으니 이곳에서의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도 그와 같은 역사가 이루어질 줄로믿고 소망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 드립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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