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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성경말씀

마태복음 26장57절 고난 당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by @블로그 2023.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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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57-75

<우리에게도 닭 우는 소리가 필요하다.>


1. 공회 앞에서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아들(57-68)
예수님을 붙잡은 무리들은 즉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끌고 갔는데, 그곳에는 이미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자 중 베드로는 끌려가는 예수님의 뒤를 멀리 따라서 제사장의 집 마당까지 갔다. 그곳에 모인 심판관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사형에 처할지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사형을 내릴만한 증언을 했지만 그럴듯한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두 사람이 나타나서 이 자가 하나님의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다시 세울 수 있다 말했다고 증언한다. 이에 대제사장이 이 증언을 듣고 왜 아무 대답을 하지 않냐고 예수님을 심문하자 그분은 계속 침묵하셨다.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묻자 당신이 그것을 말했고 당신들은 인자가 권능의 보좌 오른쪽에 앉아있는 것과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대제사장은 자신의 옷을 찢으며 흥분하면서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역정을 낸다. 그리고 더 이상 증인이 필요없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무리들의 생각을 묻자 그들은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답한다. 그들은 드디어 예수님에게 침을 뱉고 때리면서 너를 때린 자가 누군지 맞춰보라며 조롱하기까지 한다.

 


예수님을 붙잡자마자 그들이 꾸며 놓은 음모대로 진행이 되었다. 그들은 종교지도자들이 모인 심판장으로 예수님을 끌고 갔다. 체포부대와 심판관들 이렇게 그들은 치밀하게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제자들이 도망갔지만, 베드로만큼은 미련이 남았는지 멀찌감치라도 예수님을 몰래 따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늦은 밤 공회에 모여 있는 자들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지에 대한 생각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애써 잡은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 그런데 마땅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당연하다. 예수님을 모함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의 일치되는 증거를 찾아야 했는데, 그런 증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예수님이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을 들었다는 두 사람의 증인이 나타나자 그제야 심판자들은 의기양양해졌다. 그리고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자 했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침묵하시다가, 장차 재림하게 될 인자의 모습을 선포하셨다. 대제사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것은 신성모독이라고 하며 곧바로 사형을 언도한다. 원래 랍비의 율법 규정에 의하면 유월절 같은 명절에는 재판을 하지 않을뿐더러 사형선고도 당연히 금지되어있었는데, 그는 스스로 모든 법을 어기고 불법 재판을 연 것이었다. 그제야 무리들은 예수님에게 폭력을 가하며 학대하기 시작했다.

2.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69-75)
그때 베드로는 안쪽에 있는 뜰에 앉아 있었다. 어떤 여종이 그에게 다가와서 당신도 갈릴리 사람 예수의 제자가 아니냐고 묻는다. 이에 베드로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부인한다. 베드로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데, 그곳에서도 어떤 여종이 이 사람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증언한다. 베드로는 맹세하며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한번 당신은 틀림없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냐고 말하자 베드로는 저주와 맹세를 하면서 결코 그 사람을 모른다고 답한다. 그 대답을 하자마자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라 밖으로 나가 하염없이 울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에 베드로는 예수님이 계신 언저리에 계속 머물고 있었다. 오랜 기간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기에 그의 얼굴은 이미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상태였다. 그 당시 예수님에 관한 일들이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그를 따르던 자를 사람들이 모를 리 없었다. 여기저기 옮겨 다녔지만,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발각되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으며, 마지막 세 번째에는 저주와 맹세까지 해가며 예수님을 부인하게 된다. 그 순간 우렁차게 우는 닭울음소리는 배신을 예언한 예수님의 음성을 기억나게 한다. 정신을 차리게 된 베드로는 그 자리에 도저히 있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큼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노라고 호언장담했건만 저주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연약함을 거기까지였다. 가룟 유다와는 달리 그는 회복의 길로 갔기 때문이다.

3. 삶 속으로...
할 수만 있으면 되돌려 버리고 싶은 후회되는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만약에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곤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 놓을 수는 없다.

매번 후회해도 후회할 짓을 반복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니던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은 예수님을 배신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세 번밖에 부인하지 않았다. 오늘날 베드로가 우리에게 본이 되는 사도로 남아 있는 것은 그가 예수님을 부인한 후에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를 회복시킨 사건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감정의 선을 건드려서 터뜨리게 하는 사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건을 기억나게 하는 결정적인 표지가 있다. 그 표지는 각 사람마다 다양한 형태로 기억 속에 저장된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그 표지는 아마 닭 우는 소리였을 것이다. 죽을지언정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만큼은 절대로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였지 않았나! 그러나 그는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3번이나 저주하며 예수님을 부인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의 예언대로 닭 우는 소리를 통해 자신의 비열함을 깨닫고 가슴을 부여잡고 통곡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그 뼈아픈 일들은 일 회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매일 닭 우는 소리는 베드로의 마음을 깊게 후벼 팠을 것이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닭 우는 소리는 그의 비열한 배신을 생생하게 기억나게 하는 표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소리는 회개와 회복을 주는 생명의 표지였을 것이다. 우리도 다양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타협하며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에게도 닭 우는 소리가 필요하다. 예수님을 부인하고자 하는 숨겨진 본능, 그리고 내 영혼의 치졸하고 비열함을 발견하게 하는, 그래서 통렬하게 회개하게 하는 그  강렬한 소리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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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 하셨으니 이곳에서의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도 그와 같은 역사가 이루어질 줄로믿고 소망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 드립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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