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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성경말씀

마태복음 17장14-27절 겨자씨와 같은 무한한 가능성의 믿음

by @블로그 2023.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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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7:14-27

<나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는 자, 더 큰 것을 얻으리니>



1. 겨자씨와 같은 무한한 가능성의 믿음(14-21)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 밑으로 내려오니, 많은 무리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제 아들이 간질병에 걸려서 자주 불 속에 빠지거나, 물속에 빠지기도 하니 부디 아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말한다. 제자들에게 부탁해 봤지만 그들도 아들을 고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예수님은 믿음이 부족하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고 참아야겠냐고 말씀하시며, 아들을 내게 데려오라고 하신다. 그가 나아오자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으셨고, 귀신이 아이에게 나가고 그 아이는 그 순간 치유되었다. 그때 제자들은 왜 자신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냐고 묻는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것은 너희의 믿음이 적기 때문이며,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에게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가라고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니 너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내려오셨고, 예수님의 기적을 신뢰하고 있던 한 사람이 간질병에 걸린 자신의 아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말하며 고쳐주시기를 간청하고 있었다.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고 순전히 은혜를 구하는 호소이다. 그는 먼저 제자들을 신뢰하고 그들을 통해 아들을 치유하기를 원했지만, 제자들은 그의 아들을 고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분명히 구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치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들이 고치지 못한 이유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이기 때문이며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냐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는 그들이 능력을 발휘했지만, 예수님이 부재한 상태에서는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이 직접 나셔서어 귀신을 쫓아내니 아이가 즉시 치유된다. 이 모습을 본 제자들은 왜 우리는 쫓아내지 못했냐고 묻자 너희의 믿음이 작은 이유 때문이라고 답하신다.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닌데 너무나 작은 믿음이라 역사하지 못하는 효력 없는 믿음을 뜻하는 것이다. 겨자씨와 같은 믿음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믿음을 나타낸다. 단지 작은 믿음이 아니라 겨자씨와 같은 믿음은 산을 옮길 정도의 큰 믿음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믿음이다. 각자에게 믿음의 분량은 다르다. 어떤 이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작은 믿음을 가진 이가 있는 반면, 똑같은 작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자의 작은 믿음은 산을 옮길만한 크고 위대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2. 두 번째 수난예고(22-23)
제자들이 갈릴리에 모여 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인자가 곧 사람들의 손에 넘아가 그를 죽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몹시 근심하며 슬퍼했다.

두 번째 수난에 대한 예고를 하신다. 자신이 머지않아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제자들이 바라는 메시아상은 유대인과 자신들을 당장 해방시켜줄 메시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이 곧 죽으신다는 말씀은 그들의 기대를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제자들은 사흘 후에 살아나신다는 말씀은 믿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소식을 듣고도 매우 근심했기 때문이다. 첫 수난예고 때는 베드로가 강력하게 반발했는데 이젠 제자들이 매우 근심한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성전세 납부(24-27)
예수님과 제자의 무리들이 가버나움에 이르자, 성전세를 수납하는 자가 베드로에게 당신의 선생은 왜 성전세를 내지 않냐고 묻는다. 이에 베드로는 내신다고 답한다. 집에 가니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의 임금들이 관세나 주민세를 누군한테 받고 있느냐? 자신의 자녀에게서냐 아니면 남들한테서냐? 이에 베드로는 남들한테서 받는다고 답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게 하지 않으려면 바다로 가서 낚시를 던져 가장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벌려보면 은전 한 닢이 그 안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내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이 사건은 마태복음에서만 기록하고 있는 독특한 사건이다. 성전세 납부에 대한 규례는 출애굽기 30:11-6에 기록되어 있다. 20세가 넘은 이스라엘 남자는 반 세겔을 성막을 섬기기 위해 납부를 해야만 했다. 성전세를 받는 자가 예수님이 성전세를 내지 않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아 예수님은 정상적인 이스라엘 사람으로 그리고 존경받는 선생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질문에 예수님은 베드로의 생각을 물으신다. 세상의 왕들이 세금을 누구한테서 받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타인으로부터 받는다. 자신의 혈육에게서는 받지 않는다. 즉 아들은 세금 징수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성전세를 내는 이는 아들이 아닌 자들이 내는 것이고, 예수님 자신과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는 예수님이시지만, 그래도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성전세를 내신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유가 그들의 믿음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가 방해받는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만약에 예수님이 성전세를 납부하지 않으셨다면, 그것으로 인해 더 큰 위험에 빠지셨을 것이다. 성전 세을 위해 필요한 돈은 낚시를 하여 잡아 올린 물고기 배에 있는 동전으로 해결하라 하셨다. 이런 기적과 같은 일을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채워주신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함이었다.

3. 삶 속으로...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할 특권을 다른 사람들로 인해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아는 자가 정말 용기 있는 자라고 할 수 있다. 특권을 싫어하는 이는 없다. 특권을 누리면 우선 편하고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특권을 누리면, 자연스럽게 누군가는 그에 따른 피해를 보기도 한다. 특권으로 인해 발생되는 손해를 누군가가 대신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권층이 많을수록 실족하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복음은 공공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나만을 위한 복음은 복음의 가치를 무너뜨린다. 진정한 복음은 나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정과 이웃, 멀게는 우리의 사회와 민족까지 살리는데 일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즉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자유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 믿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거리낌이 없이 행동하는 것은 스스로 복음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나의 자유 때문에 복음의 가치가 왜곡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세상의 눈치를 보라는 것이 아니다. 악과 불의 앞에서는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사람들을 세우고 얻기 위해서는 나의 자유와 권리를 과감하게 포기하거나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권이 있다면 과감하게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 법을 훌쩍 뛰어넘는 곳이다. 그러나 그의 나라를 이 땅에서 구현하기 위해서 세상의 법, 즉 공공의 법과 질서를 존중하고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더 가깝게 임하게 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나의 자유와 특권을 포기하라! 더 높고 위대한 것을 취할 수 있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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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 하셨으니 이곳에서의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도 그와 같은 역사가 이루어질 줄로믿고 소망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 드립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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