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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성경말씀

성경공부 다니엘 4:19-37

by IlIlIlIlIlIlIlIlIlIlIlIlIl 2022.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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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4장 19-37절


"자아도취에 빠진 것이 교만이다. 현재 내가 가진 것을 대단한 것 인양 규정하여 굳이 내 삶에 하나님이 있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이 교만인 것이다. 이 땅의 소유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하는 것, 내가 가진 소유에 지나친 가치를 부여하여 이것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인 것이다. 이렇게 자아도취에 빠진 자가 공의를 행하거나 가난한 자를 도울 리는 만무하다. 나라는 동굴에 갇혀 있는데 어떻게 다른 이를 돌본단 말인가? 너무 높은 곳에 올라가 있기 때문에 땅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겸손은 자신이 가진 소유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내가 돈이 더 있고 명예를 가졌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나에게 참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진정한 가치는 만져지고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붙잡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진정한 겸손의 의미를 깨달은 자다. 이렇게 이 땅의 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 자가 바라보고 추구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가치이다.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신다. 그러므로 겸손한 자는 당연히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돌보는 것에 자연스레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곧 하나님의 유일한 관심사인 공의,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으로 교만한 자와 겸손한 자를 확연히 구분할 수 있다."


다니엘 4:19-37

<교만과 겸손을 구분하는 기준>

1. 다니엘의 꿈 해석과 충고(19-27)
왕의 꿈 해석을 요청받은 벨드사살, 즉 다니엘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몹시 당황했다. 왕은 그에게 번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해석하라고 말한다. 이에 다니엘은 왕의 꿈이 원수들의 꿈이었으면 좋을뻔했다고 말한다. 왕이 본 그 거대한 나무는 바로 왕을 상징함으로 왕의 강함은 하늘에 닿았고 왕의 통치는 땅끝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거룩한 파수꾼이 내려와 나무를 베고 그루터기만 남겨두었다는 것은 왕께서 사람에게 쫓겨나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뜯어먹는 신세로 전락할 것인데 일곱 때가 지나면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와 인간들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 말한다. 그루터기를 남겨두신 것은 왕이신 하나님을 인정한 후에야 다시 왕권을 찾으리라는 의미라 한다. 그러기에 왕은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에게 자비를 베풀면 복된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 충고한다.

다니엘은 꿈 해석이 느부갓네살에 대한 저주와 가깝기 때문에 당장 해석할 것을 주저한다. 그래서 오히려 이 꿈이 원수의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꿈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 찼던 왕은 괜찮으니 당장 말하라고 한다. 꿈에 등장한 하늘까지 우뚝 솟은 나무는 바로 온 세상 다스릴 것 같은 느부갓네살의 왕권을 상징한다. 그런데 하늘의 파수꾼이 나타나 그 나무를 가차 없이 베어버렸다. 하나님께서 그를 치실 것이라는 의미다. 그는 일곱 때 동안 야인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던 그 나무가 베어진 것은 순전히 교만이었다. 지상에서의 권력을 남용한 느부갓네살의 교만을 꺾기 위해 그를 잠시 치신 것이다.

그러나 그를 치신 것은 더 견고한 나라를 주시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다니엘은 한 가지 솔루션을 주는데 공의를 행할 뿐 아니라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도우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필수 행동지침이었는데 다니엘은 이것을 이방 왕에게 요구한 것이다. 원래 바벨론은 이방 나라들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압제하고 착취함으로 건설된 나라이다. 곧 불의에 의해서 건설된 나라인 것이다. 그런데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이런 폭력적인 통치방식을 버리고 정반대인 공의를 행할 것과 약자들을 도울 것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편애한다. 그곳에 하나님의 마음과 눈물이 있기 때문이다.

2. 광야로 쫓겨난 느부갓네살(28-33)
다니엘이 말한 꿈 해석이 실제로 일어났다. 꿈 해석을 들은 뒤 왕이 바벨론 왕궁 옥상을 거닐며 자신의 업적을 자화자찬하고 있는데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하늘에서 너에게서 왕권이 떠났다는 말이 들리고 다니엘이 해석한 말이 동일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왕은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서 쫓겨나 소처럼 풀을 뜯어먹으며 몸은 이슬에 젖었고 머리카락은 독수리의 깃처럼, 손톱은 새의 발톱같이 자라는 신세가 되었다.

다니엘의 꿈 해석은 정확하게 1년 후에 성취되었다. 왕은 다니엘의 조언을 듣지 않고 원래대로 권력을 누리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가 거닐었던 왕궁의 옥상정원은 말 병거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웅장했다. 그는 그곳을 거닐며 자신이 이룬 업적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업적을 자화자찬하고 있을 때 하늘로부터 음성을 듣게 되는데 그 음성은 다니엘이 해석한 꿈의 내용과 동일했다. 그리고 그 말이 마치자마자 광야로 쫓겨나 야인 생활을 하게 된다. 1년이라는 유예기간을 줬건만 느부갓네살은 변하지 않은 채 기존대로 왕권을 남용하며 교만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교만이 바뀌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꿈대로 그를 향한 심판을 시작하셨다. 여기서 그의 교만과 공의를 행하지 않는 것,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는 것이 서로 부딪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공의를 행하지 않고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임을 알 수 있다.

3. 느부갓네살이 회복되다.(34-37)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지나자 느부갓네살은 하늘을 바라보며 가장 높고 위대하실 뿐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분의 주권적인 다스림은 영원할 뿐 아니라 그분의 나라는 영원히 쇠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군대는 하늘의 군대에 비할 바 못된다. 그분이 하시는 일을 아무도 막을 수 없으며 그분이 하시는 일에 대해 감히 반문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는 자신이 정신을 차리자 원래 있던 왕의 위엄과 영광이 회복되었으며 자신을 떠났던 신하들이 다시 찾아오므로 이전의 영광보다 더 큰 영광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나는 이제부터 하늘의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께만 영광을 돌릴 것이라 한다. 과연 그의 행적은 모두 옳으며 그분은 공의롭고 교만한 이를 낮추신다고 선포한다.

 


일곱 때라는 것은 어떤 물리적인 정확한 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원래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완전 수로서 하나님의 때를 상징하는 수라고 할 수 있다. 즉 느부갓네살의 광야 생활이 일곱 때가 지났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의해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느부갓네살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에야 하나님의 위대하신 권능을 발견하게 되었다. 크고 높으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자 그의 왕권도 회복된다. 심지어 이전보다 더 큰 권능을 입고 왕권이 회복된 것이다. 더 큰 권능을 허락하신 것은 아무리 큰 영광을 소유했다 하더라고 그 영광이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의 왕권이 그를 교만하지 않게 하기 때문에 더 큰 권능을 그에게 허락하신 것이다.

4. 삶 속으로...
하나님은 교만을 가장 싫어하신다. 교만을 대적하신다고 할 정도로 교만을 배척하시고 미워하신다. 교만은 현재 내가 가진 것을 과대평가함으로 하나님의 필요성에 대해서 무뎌지게 한다. 내가 가진 것으로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살 수도 있다고 착각하게 하는 것이다.

교만의 반대는 겸손이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기뻐하신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할 정도로 겸손한 자를 원하신다. 겸손은 지금 내가 가진 것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기 부인에서 시작한다. 곧 하나님이 나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곧 겸손인 것이다.

자아도취에 빠진 것이 교만이다. 현재 내가 가진 것을 대단한 것 인양 규정하여 굳이 내 삶에 하나님이 있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이 교만인 것이다. 이 땅의 소유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하는 것, 내가 가진 소유에 지나친 가치를 부여하여 이것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인 것이다. 이렇게 자아도취에 빠진 자가 공의를 행하거나 가난한 자를 도울 리는 만무하다. 나라는 동굴에 갇혀 있는데 어떻게 다른 이를 돌본단 말인가? 너무 높은 곳에 올라가 있기 때문에 땅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겸손은 자신이 가진 소유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내가 돈이 더 있고 명예를 가졌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나에게 참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진정한 가치는 만져지고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붙잡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진정한 겸손의 의미를 깨달은 자다. 이렇게 이 땅의 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 자가 바라보고 추구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가치이다.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신다. 그러므로 겸손한 자는 당연히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돌보는 것에 자연스레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곧 하나님의 유일한 관심사인 공의,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으로 교만한 자와 겸손한 자를 확연히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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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 하셨으니 이곳에서의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도 그와 같은 역사가 이루어질 줄로믿고 소망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 드립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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