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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성경말씀

성경공부 다니엘 3:19-30

by IlIlIlIlIlIlIlIlIlIlIlIlIl 2022.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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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징악의 형태를 띠는 영화나 드라마는 인간들이 바라는 갈망일 뿐이다. 나와 당신의 일상에서 천사같은 존재가 극적으로 우리를 위험에서 구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옛날 로마시대에 원형경기장에서 순교자들이 사자들에 의해 찢김 당하여 죽을 때 하나님은 천사군단을 보내어 그들을 생명을 구해 주지 않으셨다. 그뿐 아니다. 스데반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중에 돌에 맞아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그의 생명을 구해주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그들이 죽을 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 그들의 죽음을 외면하신걸까? 아니다. 하나님은 풀무불과 같은 고통의 순간에 그들과 함께 하셨다. 천사가 함께 할 때는 그들에게 잠시 동안의 생명을 연장시켜줄 뿐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는 죽음을 초월한 말로 다할 수 없는 영광을 취하게 하신다. 그 영광은 이 세상에서 취할 수 없는 가장 고귀한 하늘의 영광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경험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궁극적인 하늘의 영광을 취하는 것이 최종적, 종말론적 승리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잠시 경험하는 승리주의에 매몰되지 말라. 그것은 이겨도 이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궁극적 승리는 이 땅에서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뜨거운 풀무불 같은 고통 중에 있을 때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경험한다면 져도 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천사와 함께 하는 것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지 아니한가!"


다니엘 3:19-30

<궁극적 승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1. 왕의 처형집행 명령(19-23)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끝까지 절하는 것을 거부하자 느부갓네살 왕은 분노가 가득하여 풀무불의 불을 평소보다 일곱 배를 더 뜨겁게 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군사 중에 가장 힘이 센 군인에게 그들을 결박하여 뜨겁게 불타는 풀무불에 내던지도록 명령한다. 이에 선출된 힘센 군인들은 세 친구의 바지와 속옷 등을 그대로 입힌채 묶어 불타는 풀무불에 던져버렸다. 왕의 명령이 그만큼 긴박했다. 풀무불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세 친구를 붙들고 있던 자들도 타 죽어버렸다. 결국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렬힌 불타는 풀무불로 떨어지게 되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을 상징하는 금 신상에 끝까지 절하지 않는 세 친구를 그냥 놔둘 수 없었다. 얼굴 빛이 변한 왕은 그들에게 더 이상 자비를 베풀 수 없어서 풀무불의 불을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 명령한다. 이는 가능한한 풀무불을 가장 뜨겁게 하라는 것이었다. 이후에 그들을 던지던 힘센 군인들도 불에 타 죽을 정도로 뜨거운 불이었다. 왕은 세 친구들이 평소에 입던 옷을 모두 그대로 입힌 채로 풀무불에 던지라고 명령했다. 그만큼 왕의 분노가 극에 달해있었다. 느부갓네살 왕의 위협은 거짓이 아니었다. 실제로 금 신상에 절하지 않은 이들을 극렬히 불타는 풀무불에 던져버렸다. 하나님만 섬기고 그분의 뜻대로 살다 보면 평안하기는커녕 뜻하지 않은 고난을 맞닥뜨릴 수 있다. 바벨론과 같은 이 세상이 원래 그렇다. 그렇기에 의로운 고난을 겪고 있다면 당신은 잘하고 있는 것이다.

2. 불 속에서 안전한 세 친구들(24-27)
세 친구가 풀무불에 던져진 직후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서 급히 일어나 신하들에게 우리가 묶어서 풀무불에 던진 자들은 세 명인데 지금 자신이 보기에는 분명히 네 명이라고 말한다. 신하들도 이것을 동일하게 목격했다. 왕은 내가 보기에 분명 네 명인데 그들은 모두 결박이 풀린 채로 불타는 곳을 자유롭게 걷고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아무런 상처도 없는데 심지어 네 번째 사람의 모습은 마치 신의 아들과 같다고 말한다. 이에 느부갓네살 왕은 뜨겁게 불타는 풀무불 근처로 가서 가장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지금 당장 이리로 나오라고 명령하자 그들은 불 가운데에서 나오게 된다. 그곳에 모였던 모든 신하들이 그들을 본즉 과연 그들은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않았으며 머리털 하나 그을리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의 얼굴 빛도 그대로로 불에 탄 냄새도 전혀 나지 않았다.

일곱 배나 뜨겁게 달군 풀무불 근처에 있던 군인들도 타죽었는데 상식적으로 그 속에 들어가 세 친구는 당연히 불에 타 죽었어야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들은 모두 상하지도 않았고 결박이 풀린 채로 풀무불 속을 돌아다녔다. 심지어 네 번째 사람도 보였는데 그는 마치 신의 아들처럼 보인다고 느부갓네살 왕은 고백한다. 신의 아들이라함은 땅의 존재가 아니라 하늘의 존재, 즉 천상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 모습을 바로 앞에서 목격한 느부갓네살 왕은 경악하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왕은 즉시 그들에게 그곳에서 나오라고 명령했고 그들이 나왔는데 전혀 몸이 상하지 않고 풀무불에 들어가기 전 그대로 나오는 것이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이 가진 절대권력으로 모든 이들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알리려 했는데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섬기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통하여 자신의 능력의 한계치를 보고 말았다. 오히려 그의 권력놀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지를 증명하는데 사용되고 말았다. 이 땅에서의 권세자들의 능력은 마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창조주 하나님, 온 세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인간이 권세를 부릴 수록 전능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이 우리 앞에 밝히 드러날 뿐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은 뒷짐지고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뜨겁고 고통스러운 고난의 현장 안에 직접 들어와 보호하시고 지켜주신다. 우리 앞에 놓여 진 삶의 현실이 뜨거울수록 더욱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가까워질 것이다.

3. 느부갓네살의 찬양(28-30)
느부갓네살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지키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가 천사를 보내시어 자신의 종들을 구원하셨다. 이들은 하나님만을 의뢰했으며 자신의 몸을 바치면서 왕의 명령을 거부하였고 자신들의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께 절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왕은 조서를 내리는데 모든 나라와 백성들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에 대해 경솔히 말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몸을 쪼개지고 하고 그 사람의 집을 거름더미로 만들 것인데 이처럼 자기를 믿는 자들을 구원할 수 있는 신은 다시는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왕은 그들은 각각 바벨론 지방에서 번영하며 살게 했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전에 다니엘의 꿈 해석을 통하여 전지하신 하나님, 즉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능하신 하나님, 즉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됐다.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전지전능하시고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에 사는 것 밖에 없었다. 그들을 해하려 했지만 오히려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그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눈 앞에서 경험했는데 어찌 그 하나님을 안전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다른 우상을 섬기지 않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신 제1계명이었다. 가장 중요한 제1계명을 지키자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구원의 손길을 내미신 것이다.

 


느부갓네살 왕이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인정하여 찬송한 여호와 하나님을 백성들도 동일한 태도를 보이며 인정할 것을 조서를 내려 명령한다. 왕이 굴복한 신을 백성들도 굴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하나님을 멸시하거나 경솔히 말하면 그 대상자뿐 아니라 가문이 씨를 말려버린다고 할 정도였다. 그와 동시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자연스럽게 높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각자 맡은 지방에서 이전보다 더욱 번영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왕이 두려워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4. 삶 속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결말이 권선징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악한 것은 반드시 징벌받고 선한 것은 권함을 받는다. 즉 선이 이기고 악이 진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가 그토록 영화와 드라마에 환호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우리의 현실 때문이지 않은가?

우리 앞에 놓여 진 현실은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악은 날이 갈수록 형통하고 선은 힘을 잃어가는 듯하다. 바벨론의 세상 속에서 온갖 우상을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긴다는 것은 어리석어보이기까지 한다. 당연히 당장의 승리도 없고 앞으로의 승리도 보장받지 못할 것 같아 보인다.

권선징악의 형태를 띠는 영화나 드라마는 인간들이 바라는 갈망일 뿐이다. 나와 당신의 일상에서 천사같은 존재가 극적으로 우리를 위험에서 구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옛날 로마시대에 원형경기장에서 순교자들이 사자들에 의해 찢김 당하여 죽을 때 하나님은 천사군단을 보내어 그들을 생명을 구해 주지 않으셨다. 그뿐 아니다. 스데반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중에 돌에 맞아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그의 생명을 구해주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그들이 죽을 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 그들의 죽음을 외면하신걸까? 아니다. 하나님은 풀무불과 같은 고통의 순간에 그들과 함께 하셨다. 천사가 함께 할 때는 그들에게 잠시 동안의 생명을 연장시켜줄 뿐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는 죽음을 초월한 말로 다할 수 없는 영광을 취하게 하신다.

그 영광은 이 세상에서 취할 수 없는 가장 고귀한 하늘의 영광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경험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궁극적인 하늘의 영광을 취하는 것이 최종적, 종말론적 승리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잠시 경험하는 승리주의에 매몰되지 말라. 그것은 이겨도 이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궁극적 승리는 이 땅에서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뜨거운 풀무불 같은 고통 중에 있을 때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경험한다면 져도 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천사와 함께 하는 것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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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 하셨으니 이곳에서의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도 그와 같은 역사가 이루어질 줄로믿고 소망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 드립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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