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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성경말씀

마태복음 22장 23-33절 참된 신앙에 도전하는 현세주의

by @블로그 2023.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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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에 도전하는 현세주의]
(마태복음 22:23-33)



1. 예수께 도전한 사두개인들



성전의 권세를 가진 자들은

예수님의 권세의 출처를 물으며 도전했고,

당대의 목회자인 바리새인들과 정치인이었던 헤롯당원들은

세금 문제로 예수를 올무에 넣으려 했었는데,

이번에는 당대의 세속적이고 현세적인 문화를 대변하는

소위 사두개인이라는 인물들이 등장해서

예수님께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두개인들은 사독의 후손들로서 제사장 계열이었다.

이스라엘이 여러 격변기에 휘말리면서 이들은 정치세력화 되었고,

상류층으로 부와 세속적 삶을 주도하는 존재들이 되었다.



이들의 주장은 '부활이 없다, '

'세상은 그냥 현세 뿐이다.'였다.



불의가 심판을 받고 의가 끝내 인정을 받는 내세가

이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이들은 부활이 있으면 모순투성이의 세상이 될 것임을

'형사취수' 제도를 예로 들어 말하며 예수께 도전했다.

부활이나 내세가 있으면 훨씬 골치가 아프다는 것이

그들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이었다.



그들은 이 세상을 다 가졌다.

마음껏 권력을 누렸고 부를 누렸다.

그들에게는 다음 세상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얼마나 현세에 빠져 있는지를

그들의 질문이 잘 보여준다.

 


<마 22:24-28, 새번역>

(24) "선생님, 모세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에게 장가 들어서, 그 후사를 세워 주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25) 그런데 우리 이웃에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장가를 들었다가, 자식이 없이 죽으므로, 아내를 그의 동생에게 남겨 놓았습니다. (26) 둘째도 셋째도 그렇게 해서, 일곱이 다 그렇게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27) 맨 나중에는,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28) 그러니 부활 때에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모두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신앙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질문임을 금방 알 수 있는

이런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그들은 세상의 부와 권력에 취해 있는

철저한 현세주의자, 세속주의자들이었다.



2. 형사취수제도



그들이 말한 형사취수 제도에 대해서 그들은 알았을까?

그들은 형사취수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은 알았으나,

그 제도의 참된 의미와 존재 이유는 몰랐던 것이 분명하다.



사두개인들은 율법을 알았으나

율법의 정신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고,

율법의 정신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형사취수 제도는 일종의 사회보장 제도였다.

이스라엘 안에서 분배되었던

일정 부분의 토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죽을 경우,

자식이 없이 아내만 남아 있다면

그 아내는 사회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과부가 되고,

그 과부가 땅을 무를 수는 없기 때문에

그 땅은 누군가에게 팔리게 된다.



이런 경우에 대한 대처가 없으면

결국 광대한 영토를 독식하는 거대 지주들이

출현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셈이 된다.



그렇게 되면 혹사 당하는

소작농들이 생기게 될 수밖에 없기에,

율법은 죽은 자의 동생이 있다면

형수와 결혼을 해서 기업을 무르도록 한 것이다.



사두개인들은 사회보장 제도로서의 형사취수 제도의 역할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기에

형사취수 제도를 들어서 부활의 불합리를 주장했던 것이다.



사두개인들은 현세주의에 빠져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탐욕에 깊이 취해서,

하나님이 관심을 두시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패역한 사람들임에 분명했다.



3. 주님의 대답



주님은 사두개인들에 대해서 분명하게 평가하셨다.

그들이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몰라서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 22:29,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을 말씀하셨다.

<마 22:32,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무슨 의미일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모두 죽은 사람들이었다.

왜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을까?

하나님은 살아계시므로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강하고 살아 있을 때 뿐 아니라 약하고 죽어 있을 때에도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다.  

그러므로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은 '산 자들의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다.

죽은 자를 살리시기에 '산 자들의 하나님'이다.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부인한다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빙자해서 부와 권력을 쥐고 있었으나,

현세주의에 빠져 하나님조차 오해했던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의 연장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 결판나지 않는다.

신앙조차도 실용적이고 현세에 도움이 되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사두개인의 현세주의에 빠진 것이다.

4. 말씀묵상은 어떤 과정일까?

현세주의자들인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도전장을 내민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

<마 22:33, 새번역> 무리는 이 말씀을 듣고, 예수의 가르침에 놀랐다.



도전장을 내민 사두개인들은 완전히 패했고

무리가 주님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며 놀라는 결과가 주어졌다.



말씀을 묵상하는 과정은

나의 현세주의적 세계관이

주님께 도전장을 내미는 과정이다.



그리고 묵상의 결과는 언제나

나의 세속적이고 현세주의적 가치관이

주님 앞에 완전히 패배하고

주님의 가르침에 놀라는 것이 된다.



말씀을 통해 나의 타락한 죄성이 드러나고

나의 숨겨져 있던 세속적 욕망이 드러나고

거룩한 척 하지만 사실은 현세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나의 처절한 자아가 드러나서 주님의 가르침과 부딪힌다.



그리고 결국 나의 악함을 깨닫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의 가르침에 놀라는 그 과정을

하루하루 경험해 가면서

나의 현세주의적 세계관이 무너진다.



내가 패배하는 것 같고

주님은 승리하시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도 승리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나의 죄성이 주님께 도전장을 내미는

매일의 말씀묵상을 놓칠 수 없다.



나도 성도들도 말씀 앞에서

자신의 죄성을 깨닫고 주님과 씨름하는 과정을

매일 놓치지 않길 간절히 소원하는 아침이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0장 15절) 

 

로마서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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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과 섬김 


아름다운 성경말씀으로 주 예수그리스도를 섬기고 이웃과 행복을 함께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실천하고 나눌 때 더욱 풍성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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